[은위/해진해랑] 탄식 (+15) 본문
이글루에서 소설쓰기 너무 불편합니다.. 들여쓰기 한거 다 초기화되고.. 짜증!
그래서 이제부터 본진에 소설 업로드 합니다.
2차창작 접으려고 했는데 ㅋㅋㅋ 공동관리자의 파워가 일케 무섭습니다!
*캐릭붕괴주의
*약간의 수위주의
자신을 너무 깎아버려서 시체가 되어버린 사람을 알고 있다.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 진흙탕을 굴러도 알 수 있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해바라기구나.’
나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볼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는 주위에 꼬여 드는 벌레를 사정없이 내칠 뿐이다.
“대체 그 꼴이 뭡니까?”
한 달 도안 훈련소에 털끝 하나 내비치지 않던 그가 다시 얼굴을 삐죽 내비쳤다. 그것도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뭐.”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데, 변해버린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나를 보지도 않는다.
“또 어디서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나 했더니.”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그는 분명 리해랑 흑룡 조장이다. 모습이 변해도 향기는 변하지 않으니 알 수 있다. 대체 왜 성형수술 따위를 하고 온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입을 열었는데, 어이없음에 웃음부터 먼저 튀어나온다. 겉치장이라니. 내일 바로 시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단순한 객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망나니 조장이라고 해도, 성형수술은…….”
“닥치라우! 더 씨부리면 주둥아리를 비틀어버리가써. 썩 꺼지라!”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두르는 모양을 보니, 슬슬 비웃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저렇게 화낼 일인가. 평소와는 달리 도가 지나치게 화를 내는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더 묻지도 못한 채 조용히 물러서야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고, 해랑 조장은 굳은 표정을 펴지 않았다.
그때 물러서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후회는 바람과 같다. 지나간 후에 바라보아도 잡을 수 없고, 남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되돌아보고 되돌아보며 탄식하는 것은 내가 아직 나약한 탓이고, 내가 너무 고통스러운 탓이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해도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가라앉을 뿐. 계속 떠오른다.
당장 오늘 밤의 저 달만 보아도.
‘그 날 밤도…….’
또 떠오르고야 마는 그 날 밤의 달은 유난히 밝았다. 병아리의 뽀송한 털 색 같은 달. 잡히지도 않는데, 손을 뻗으면 약하게 고동치는 병아리가 손에 쥐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껏 손을 뻗어 달빛을 끌어모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려니 잠도 달아나고 달빛도 전부 달아나버렸다. 힘든 훈련에 지친 조원들은 전부 잠에 취해버렸고, 일어난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홀로 샛노란 달빛 아래 일어섰다. 눈이 부실 정도의 달빛.
그 달빛은 막 염색을 하고 돌아온 해랑 조장의 머리색과 닮아있었다. 햇살을 잔뜩 빨아들인 해바라기의 고운 노란색. 그 아래 서 있으니 마치 해랑 조장의 앞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낮에 조장의 성형한 모습을 보고 웃었던 것처럼. 병아리니, 해바라기니. 조장이 망나니 같은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웃다가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잠에 취한 동무들이 깰까 걱정하지도 않았다. 순찰중인 조교가 달려오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내 발이 향하는 곳에는 이미 달빛, 아니 해랑 조장과 나 둘뿐이었으니까.
홀린 것이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유난히 노란 달빛에, 눈꺼풀 안에서 뱅글뱅글 맴도는 해랑 조장의 모습에. 나는 정신없이 빠져들어 그가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알지 못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차라리 그런 나를 붙잡는 동무가 있었더라면. 벌을 받아도 좋으니, 조교가 달려와 나를 막아섰더라면. 또 바람을 붙잡는 듯 후회를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은 나를 비웃을 뿐이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며.
나는 문을 열고 달빛을 향해 걸어나갔다. 해랑 조장이 잡힐 것만 같았기에.
어림잡아 새벽 2시경이었을까. 홀렸다는 명목에 무작정 나선 길은 어쩐지 여유롭지 못하게 해랑 조장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를 홀린 것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해랑 조장이라면 홀린 나의 손을 붙잡고 같이 웃어줄 거라는 바보 같은 상상 때문이었을까.
사전에 허락도 받지 않은 산책길은 결국 그의 방문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달빛이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악...!”
그때 내 귀에 들려온 것은 모든 고요를 깨부수었다.
“내버리기에는 아까운데요. 이렇게 물이 올라서…….”
“으, 크으……. 아! 아…….”
단정하지 못하게 흐느끼는 소리. 그와 동시에 귀에 익숙한 목소리. 그것은 절대 해랑 조장의 방에서 들려오면 안 될 소리였다. 분명 고용한 사방. 해랑 조장의 성격에 맞게 뚝 떨어진 그의 독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단순하지만 복잡하게, 고요하지만 소란스럽게 나에게 흘러들었다. 끊임없이.
“제 어미를 꼭 닮았지?”
요동치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마디. 듣지 말아야 할, 들려와선 안 될 것들은 한번 들려오기 시작하면 몰아치듯 밀려온다. 몸에 피가 돌지 않아 서늘해졌다. 뇌에 혈액공급이 멈춘 탓에 사고가 정지했다.
“하...아! 으…….”
“실컷 즐기라고. 내일이면 없을 물건이니까.”
해랑 조장. 흐느끼는 목소리는 해랑 조장의 것이었다. 남 앞에서 눈물을 내보인 적이 없어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들어서는 안 된다. 보아서는 더욱 안 된다. 정지한 사고 속에서 이성이라는 놈이 그렇게 외쳐댔다. 하지만 얼어붙은 몸뚱이는 이성을 내친 지 오래였고, 한동안 처절하게 울부짖는 그 목소리 속에서 가만히, 귀를 열고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알아챘다. 달빛이 창문을 가리키고 있다고. 나를 홀려버린 그것은 내 손을 잡아끌어 이쪽으로 오라고 속삭였다. 들어서는 안 된다. 보아서는 더욱 안 된다. 이제는 내쳐버린 가냘픈 소리가 나를 힘없이 잡았으나, 나는 무심하게도 그것을 짓밟았다. 움직이기 시작한 발로. 사방은 정말 고요한데, 소란은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흐. 이 살덩이가 잡히는 감촉까지 꼭 제 어미를 닮았습니다.”
“그리운 맛이지.”
“그래서 얼굴까지 제 어미랑 똑같이 고쳐준 겁니까?”
“생각난 김에 한 걸세. 이제 못 본다니 좀 아쉽기도 하군.”
“아, 흑. 흐... 더, 더러운…….”
“사생아 주제에!”
뺨을 갈기는 소리가 마치 공간을 깨는 소리처럼 귓가에 울려 퍼졌다.
“감히 더럽다는 말을…….”
“어허, 그만두게. 어차피 하루 즐기고 버릴 소모품이니까.”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산길을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왜, 어째서 달리고 있는 것인지. 없어야 할 공간에 들어찼던 귀신같은 그 얼굴들과 해랑 조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어째서 나는 멈추지 않는지. 모든 의문을 잊어버리고 싶은 나는 미친 듯이 내달렸다. 아니, 구르고 있었다. 돌부리에 걸린 건지, 절벽으로 떨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에서 흐르는 피와 입으로 흘러들어오는 비릿한 맛이 내 몸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가 없었다. 샛노란 달빛이 나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쫓아 올 거라면 차라리 나를 집어삼켜 줄 것이지. 제멋대로인 샛노란 빛깔은 나를 쫓아 산길을 구를 뿐이었다. 그 현실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함께 사라질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현실.
“해...랑…….”
후회와 한탄만이 섞인 이름, 주인을 닮은 그 이름이 제멋대로 내 입에서 뛰쳐나왔다.
“해랑, 조장……. 조장…….”
제멋대로 뛰쳐나온 이름들은 독이다. 내 안에서 독을 만들어 내 목을 졸랐고, 나를 소리치게 했다.
“으, 윽, 흐... 해랑 조장! 해랑... 해랑 조장!! 해랑... 흐으…….”
끝이다. 내 기억은 이게 끝이다.
창문 가를 벗어나기 전, 나를 바라보던 핏기 없는 눈동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나는 모른다. 다음 날, 아무 일도 없던 듯 태양은 떠올랐고, 그는 떠났으니까.
그가 떠나고, 나는 그가 쓰던 독방을 물려받았다. 첫날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둘째 날에는 간신히 발을 들이밀고 문을 닫았다. 셋째 날에는 구토를 하면서도, 그가 널브러져 있던 침대를 바라보았다. 방에 들어와 있는데도 난 여전히 창문 밖에 서 있는 듯했다. 방은 넓은데 내 공간은 두 발을 디딜 구석뿐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 흘러 조금은 익숙해진 지금, 난 여전히 그날의 달빛에 홀려 잠을 잘 수가 없다. 약을 먹어도 감은 눈꺼풀 속에서 그가 몇 번이고 나를 바라본다. 자신을 깎아내고, 깎아내서 아랫것에게 온정을 베풀던 사람. 망나니라고 불려도 누구보다 손이 따뜻했던 사람.
어쩌면 자신을 전부 깎아내서 시체가 될 정도로, 자신의 속에 담긴 어머니의 모습을 비워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비워내면 그는 대체 어디에 남는 것일까.
물어볼 사람은 이제 없다. 올해도 훈련소 주변에 해바라기는 지독하게 피었다. 떠날 때까지도 하늘을 눈에 담던 모습.
오늘 밤도 나는.
음... 과거에 썼던 소설입니다.
아 저는 또 죄를 저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