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의 기억. 본문
공항 면세점은 3교대 근무로 운영된다.
아침 6시 반(혹은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를 하는 오전조, A조.
일반 회사원처럼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근무를 하는 중간조, B조.
오후 1시에 출근해 저녁 9시(혹은 9시 반)까지 근무를 하는 오후조. C조.
24시간 운영되는 매장을 제외하면, 보통 A조가 오픈, B조가 마감을 하게 된다.
내가 근무했을 당시의 이야기지만, 아마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그 날은 A조였다.
A조. 공항에 도착하여 유니폼을 갈아입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적어도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이동수단은 공항 리무진 버스. 집 근처 정류장에서 4시 50분 차를 타면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
아직 잠들어 있는 서울 시내를 달리는 동안, 새벽 버스는 조용하다.
덕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공항에 도착해버린 버스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잠에 취해버린다.
그런 날의 하루는 지루하다.
나는 미처 깨지 못한 잠을 질질 끌며 공항으로 들어갔다.
면세점은 위치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탑승객이 많은 게이트 (비행기가 많이 뜨는 게이트)가 밀집된 장소일수록 매장은 화려하고, 규모가 커진다.
보통 인천공항 중앙이 그렇다.
내가 근무하던 매장은 막말로 구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
게이트 하나가 바로 앞에 있지만, 비행기도 잘 뜨지 않고 승객도 적다.
당연히 면세점 고객도 적다.
그런 주제에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만 많고 고객은 없다.
예전에는 매출이 높았다고 하지만, 게이트 이용이 적은 지금은 단지 과거의 영광일 뿐.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귀양지'라고 말했던 적도 있다.
그런 매장의 대우가 어떨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매장 앞에 보이는 풍경도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그 날.
날씨가 좋지 않아 유난히 지루하다며,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따분해했다.
괜히 상품을 점검하기도 하고, 디스플레이도 바꾸고.
그런 노력에도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교대해 줄 직원이 온 것을 확인하고 하품을 하며 휴게실로 들어갔다.
나는 SNS를 하지 않기에 핸드폰을 잡으면 먼저 메신저를 켠다.
아침 시간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들을 읽고, 답장한다.
그 날은 형식적인 아침 인사만 오갔을 뿐.
대충 답장을 보내고 인터넷을 켰다.
그때 보인 것은 네이버 메인화면에 떠 있는 기사.
"어? 배가 침몰했나 봐."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내 앞에서 쉬고 있던 직원이 반응했다.
"네? 배가 침몰해요?"
나는 대충 기사를 읽어내렸다.
"수학여행 가는 배가 침몰했나본데... 전원 구출했다고 나오네. 여기 속보 떠 있어."
"그래요?"
이때 나는 여객선이라고 해도 규모가 작은 배인 줄 알았고, 어쨌든 승객을 전원 구출했다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뉴스 기사를 더 찾아보지는 않았다. '전원 구출'이후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내 앞에 앉아있던 직원도 해당 기사를 찾아보려는 듯 인터넷을 켰다.
"어? 단원고...? 여기 우리 동네인데?"
놀란 듯 핸드폰을 바짝 들여다보는 직원에게 별일 없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 구출했다고 나오지 않느냐고 말해주었다.
"뭔데? 무슨 일 있대?"
다른 직원이 휴게실에 들어오며 물었고, 우리는 마치 가십거리를 주고받듯 짧게 이야기를 끝냈다.
그렇게 끝났어야 할 이야기였다.
그 기사는 오보가 아니라 사실이었어야 했다.
구출 백여 명.
476명이 탑승한 배에서 단 백여 명만이 구출되었고, 아직 구조 중이라는 뉴스.
그리고 배가 가라앉고 있는 사진.
오보가 정정되고 직시한 상황은 지옥 그 자체였다.
어느 누가 단번에 믿을 수 있었을까. 그것이 실제상황이라고.
속보가 계속 뜨고 현장사진이 계속 올라오는데도 나는 눈을 의심했다.
2014년이다. 과거 타이타닉 침몰 사건이 일어난 지 백 년도 더 지났다.
그런데 어째서 그 악몽이 재현되고 있는 것일까.
기술이 발전했다. 대형 여객선일수록 안전하게 설계되었을 것이다.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도, 구조도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속보가 올라오는 속도보다, 사람 한 명의 구조가 빨라야 당연한 일이다.
삼면이 바다인 이 나라가 해상사고에 대처하지 못한다니.
최악의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불안한 공기 속에서 시간은 흘렀다.
여전히 손님은 없었지만, 어딘가 어수선했다.
수다를 떨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들 입을 닫고 있었다.
다만 계속 불안해하는 직원들의 눈빛이 매장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모두가 가만히 있지를 않았고, 수시로 휴게실에 들어가 뉴스속보를 확인했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을 너무 만진다고 한마디 했을 상사도 입을 다물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래.
그래도 그때까지는 믿었다. 모든 사람이.
"구출되겠지.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뉴스 보니까 물이 안 들어간 공간이 있나 본데..."
괜찮다, 괜찮다고 다들 입을 달싹거렸다.
게이트 앞에 놓인 TV가 작은 소리로 사고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데도, 밥을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천항이면 바로 저기잖아."
어떤 직원이 창밖을 바라보며 이미 배가 떠난 자리를 그리워했다.
마치 곧 돌아온다고 믿는 것처럼.
그다음엔 어떻게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은 수시로 들여다보던 뉴스 기사와
사고를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의 대화뿐이다.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결국, 오후 4시. 퇴근 시간이 되어도 웃는 이는 없었다.
웃을 수 있을만한 소식을 기다렸는데, 기다린 시간만큼 안타까움이 커져 버렸다.
그래도, 어쩌면, 반드시, 꼭.
버릴 수 없는 단어를 계속 떠올리며 나를 포함한 A조 직원들이 면세구역을 빠져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공항 1층 입국장에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TV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화면은 사고를 시간별로 나누어 설명해주고 있었다.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 화면을 응시하는 그 장면이 너무나 생소했다.
지나가던 공항 경비대원들조차 잠시 발을 멈추는 그 모습이.
나는 지하철로 가던 발을 멈추고 그대로 빈 의자에 앉았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 조그맣게 떠 있는 '실종자'란 단어.
그 단어 밑에 적힌 숫자가 너무 두려웠다.
누군가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고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침에 몇 번이나 보았던 장면을 눈에 담고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소와 다름 없을 것 같던 날.
궂은 날씨에 기분이 가라앉아 도저히 웃음이 안 나던 날.
퇴근이 다가오는데도 기쁘지가 않고,
시끄럽기만 한 공항이 유난히 조용했던 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날.
대한민국 시민인 나는 그렇게 사고를 지켜보았다.
기적을 바랐던 많은 사람과 함께.
벌써 2년이 지났다.
며칠 전 나는 익명으로 고민이나 짧은 글을 투고하는 어플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는 이의 쪽지를 받았다.
'4월 16일'이라는 날짜가 적힌 쪽지.
나는 한동안 쪽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답장은 할 수가 없었다.
최초에 기억한다고, 잊지 않겠다고 했던 날로부터 벌써 2년.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추모를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그날을 기억하듯, 하늘은 비를 서럽게 흩뿌린다.
리본 하나라도 달아주고 왔어야 하는데. 하필 다리를 다쳐 멀리 나갈 수가 없는 나는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는 결심을 담아 이렇게라도 추모하고자 한다.
홍대 입구 8번 출구에 가면 노란 리본을 나누어주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고 이후 시작된 정치 싸움과 시민들의 갈등은 아직도 잠들지 않았다.
그때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저 고통스럽게 눈을 감은 이들을 추모하는데, 왜 이렇게 잡음이 많이 들려야 하는 건가.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오늘만큼은 모든 시민이 이 참사를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2년 전 오늘 별이 된 사람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해주길.
... 마음을 전달하는 글은 어렵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침부터 글을 쓰고자 했는데, 마무리 지으려고 보니 벌써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이다.
이 글로 내 기도가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닿았으면 좋으련만.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어떤 직원의 동생이 꾼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 꿈에서, 아주 많은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곧 빛이 위에서부터 환하게 비추고, 그들은 웃으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그 장면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꿈을 꾼 사람은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 날은 세월호 49재를 지내는 날이었다.
하늘로 올라간 그들이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을 거라 믿는다.